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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악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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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현악기전문가협회 작성일16-08-10 10:55 조회1,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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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악기사※

명성악기사 
051-208-7070 악기판매점

부산 사하구 낙동대로 214-1

지번괴정동 1001-9

김창욱의 음악의 날개위에 <21> 어느 악기제작자 이야기-박정부
수제 클래식기타 제작에 바친 한평생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삽화=권용훈
악기(樂器, Instrument)는 음악적 사고와 질서를 소리로 현실화시키는 도구이며, 그 구조는 인간의 신체에 걸맞게 조형된다. 즉 그것은 인간 지체의 운동과 호흡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18세기 말 유럽의 유행악기로 우뚝 섰고, 20세기에는 전 세계 청소년운동에서 대표적인 악기로 군림했던 기타(guitar)는 섬세한 소리, 다채로운 음색, 그리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악기라는 점에서 흔히 '작은 오케스트라'(베토벤)로 찬미되었다.

1960대 중반의 박정부(괴정 명성악기사 대표) 씨는 올해로 35년째 기타를 제작하는 이 시대의 장인(匠人)이다. 일찍이 그는 명문 진주고교와 서울미대(61학번, 조각전공)를 졸업했고, 대학 재학시절인 64년에는 당대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서 영예의 특선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이같은 이력을 가진 그가 악기제작자로 평생을 살았다는 것은 퍽 의외의 일이다.

1972년 그는 홀연히 부산 감천으로 내려와 기타 제작회사 피아레스(peerless)에 입사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회사는 최고 품질의 악기 생산에 주력했고, 그는 여기서 10년 동안 기타 제작을 위한 엄격한 수련과정을 거쳤다. 여기에는 목재건조법에서부터 악기의 각 부분을 깎는 가공, 요소를 적재적소에 붙이는 조립, 악기에 페인팅을 하는 도장, 줄을 세팅시키는 사상작업 등이 포함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때때로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의 악기 제작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고난도의 제작기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이로써 그는 훌륭한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은 재료, 제대로 된 설계, 탁월한 기술과 폭넓은 경험, 음색을 위한 페인팅 등이 일체되어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악기제작에 몰두했던 70년대는 대학을 중심으로 포크기타(통기타)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급격히 팽창한 시절이었다. 그것은 청바지·생맥주·미니스커트·장발족·쌍쌍파티와 더불어 당대 청년문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한대수·김민기·양희은·송창식 같은 포크가수가 잇따라 데뷔했고, 그들이 부른 '행복의 나라', '아침이슬', '하얀 손수건' 등 포크가요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소통되었다. 당시 포크기타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내수시장 규모만도 매달 2만 여대에 이르렀고, 피아레스에서 생산된 4만~5만여 대의 포크기타는 전량 해외시장으로 수출될 정도였다.

80년 기술연수 차 미국 펜실베니아의 C. F. 마틴사에 연수에 다녀온 그는 1982년 불현듯 회사를 그만 두었다. 기타의 고급화, 클래식기타의 '작품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비록 수공예로 소량생산되었지만, 그것은 해외수출은 물론 국내 대학을 통해 폭넓게 수용되었다. 이 무렵 각 대학에서는 클래식기타 서클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이 연합회를 결성해서 잇단 콩쿨대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사람에게는 그가 만든 기타가 수여되었으며, 특히 대학축제 무대에서 그가 제작한 기타로 합주가 행해질 적에 그는 어느 때보다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대학에 정규과정이 없는 터에(부산의 4년제 6개 대학 음악학과 어디에도 여전히 전공과정이 없다), 클래식기타는 주로 과외(공과대·의과대 등)의 학생들에게 유달리 환영받았다. 클래식기타의 마력에 흠뻑 도취된 의대생 가운데는 본과 진학을 앞두고 유급되는 경우도 더러 생길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그것은 차츰 퇴조하기 시작했고, 키보드와 일렉트릭기타 등 전자악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어느덧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그가 바이올린 제작 쪽에 무게중심을 두게 된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어언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기타는 그 화려한 명성과 영화를 다시금 누릴 수 있을까? 아니, 뜬눈으로 밤을 새운 희뿌윰한 새벽녘, 마침내 완성된 '작품'의 줄을 튕기면서 느꼈던 그 강렬한 희열을 그는 또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음악평론가 kcw66@chol.com [2006/11/2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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